성률詩

슬리퍼

sihatogak 2020. 11. 11. 08:45

슬리퍼

 

 

 

황소개구리만 한 아이들의 슬리퍼 물에 젖은 채 사방팔방으로 튀려다 자빠지거나 벌렁 누워 있어 구멍이 숭숭 나 울음주머니를 잃은 맹꽁이처럼 습지에 갇혀 있던 것들 가끔 밖에 나와도 오래 달리지 못해 쉽게 허락하고 쉽게 버림받는 것들 물 머금지 못하는 타일벽에 세워둬 딱딱해진 혀로 아이들을 세우려 한 적 있던 금 간 얼굴이 보여 뭍에 오른 은어처럼 사랑이 빳빳하게 굳어가

 

꽃무늬 거울면

얼얼해진 귓불로 어섯만 보던 겨울 안경을 벗는 너는 질 낮은 쓰레빠로 뺨을 맞지 그도 남자라고 때려 남자가 될 너도 울지 않아 교실 창가 커튼 뒤로 얼핏 그녀가 보여 슬리퍼가 너를 부릴 거라는 악담의 출처는 네 구부린 허리 얼얼한 뺨에 남은 벌집 같은 여자의 자국이 거울면의 꽃무늬처럼 오래 남아돌아 무얼 보러 갔는지 수돗가 위에 올려둔 안경은 여태 돌아오지 않고

 

누항

불편하게 얇은 슬리퍼들이 낮게 줄 서 있던 곳 소경의 안마를 받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 마구 섞여 될 대로 되라지 보이지 않는 것들은 끝내 보이지 않아 젖가슴을 덜렁거리며 소가 들어와 네 소가 아니라 머뭇거리지 주섬주섬 승강기까지 슬리퍼를 신고 나왔는지 그냥 나왔는지 알 수 없어 바닥이라는 게 너무 얇고 너덜너덜해

 

얼굴 없는 거울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닌 너의 얼굴은 쉽게 말라 함부로 젖지 고스란히 돌아갈 거기를 묻는 것처럼 답할 수 없는 게 있어 얼굴에 꽃무늬가 비치도록 누가 부려 줄 수 없듯이 구멍이 얼굴에 숨는 것처럼 숨길 수 없는 게 있어 아래로 딱딱하게 위로 부드럽게 구는 닳고 닳은 합리처럼 쉬운 건 더 쉽게 어려운 건 더 어렵게 해드리겠다는 바닥이 보여 내 바닥도 너처럼 부려 줄래 부인한 나를 너로 부른 것처럼 말고 제대로

 

'성률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 올림픽  (0) 2024.01.17
데칼코마니  (0) 2020.11.11
커녕  (0) 2020.01.31
면천지  (0) 2020.01.31
청어  (0) 2020.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