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지(硫酸紙)
카스테라를 다 먹고 남겨진 너를 씹어 먹은 적 있어
네 이름 따윌 생각하기에는 가난의 양이 모자랐던 거야
나무에 대한 기억은 이제 없는,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개구리 같은,
네 이름을
사전에서 찾았어
뚝
뚝
물기에 강해야 하는 네 이름
가난하고 고되고 시고 슬픈 네 이력에는 산소가 부족해
민물 짠물 차고 더움에 관계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오랫동안 견딜 수 있어서 카스테라를 위해 포장만 하는
제기랄 그래서 그랬니
카스테라는 작더라도
네 온몸 바닥엔 카스테라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를 바랐는데
늘 부족했지 뭐니
카스테라를 넷이서 나눠 먹고
네 등분한 너를 씹어 먹은 적이 있어
그것도 제일 작은 조각이 걸릴 게 뭐람
너라면 어땠겠니 그런 너를
처음 잔 여자 친구와 차를 마시러 갔다가
접시에 놓인 빵 아래에서 보고 말았어 제기랄이지 뭐니
구불구불한 너를 보자 네 이름이 궁금했던 거야
정권이 일곱 번이나 바뀐 뒤였어
너는 바뀌지 않아서 변해갔고 멀어져 갔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니
이젠 카스테라를 먹지 않아
더 이상 너는 먹을 게 되지 못했어
빠른, 시간의 용액에 담긴 채
오랫동안 견딘 나는 질긴 사랑을 포장하고 있어
변질되지 말아달라고 아등바등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