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유산지(硫酸紙)

sihatogak 2009. 4. 20. 11:38

유산지(硫酸紙)

 

카스테라를 다 먹고 남겨진 너를 씹어 먹은 적 있어

네 이름 따윌 생각하기에는 가난의 양이 모자랐던 거야

나무에 대한 기억은 이제 없는,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개구리 같은,

네 이름을

사전에서 찾았어

물기에 강해야 하는 네 이름

가난하고 고되고 시고 슬픈 네 이력에는 산소가 부족해

민물 짠물 차고 더움에 관계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오랫동안 견딜 수 있어서 카스테라를 위해 포장만 하는

제기랄 그래서 그랬니

카스테라는 작더라도

네 온몸 바닥엔 카스테라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를 바랐는데

늘 부족했지 뭐니

카스테라를 넷이서 나눠 먹고

네 등분한 너를 씹어 먹은 적이 있어

그것도 제일 작은 조각이 걸릴 게 뭐람

너라면 어땠겠니 그런 너를

처음 잔 여자 친구와 차를 마시러 갔다가

접시에 놓인 빵 아래에서 보고 말았어 제기랄이지 뭐니

구불구불한 너를 보자 네 이름이 궁금했던 거야

정권이 일곱 번이나 바뀐 뒤였어

너는 바뀌지 않아서 변해갔고 멀어져 갔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니

이젠 카스테라를 먹지 않아

더 이상 너는 먹을 게 되지 못했어

빠른, 시간의 용액에 담긴 채

오랫동안 견딘 나는 질긴 사랑을 포장하고 있어

변질되지 말아달라고 아등바등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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