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
그녀가 처음 온 날
석윳내가 석간신문의 활자처럼 번져
방 안에 퇴적된 공기를 읽어내고는
얼굴의 물기부터 닦아내었다
그녀가 슬픔을 닦아주지는 않지만
어린 코를 훔쳐내거나
고추밭에 낮게 등 구부리고 있거나
미늘로부터 한 생을 떼어내기는 했을 텐데
회갑기념 1983은
지난 겨울 감나무 위의 까치밥으로
여학생 오픈하우스 1990은
하이힐 벗은 부은 발로
설악산 등반기념 2000은
반지하 단칸방의 들끓는 이마 위로
얼고, 웃고, 식히며 닳아가고들 있을 텐데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등 뒤에 놓여진 그녀는
술래가 된 그에게
처음으로 손목 허락하기도 했을 텐데
닦다가 닦다가
출생지와 출생년도를 지워버린 그녀는
누군가의 발을 닦아주며 울다가 울다가
방도 훔쳤을 텐데
훔치다 훔치다 훔치는 삶의 뒤태를 보여주기도 했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
삶고 삶아 그렁그렁한 몸빛으로
그날의 햇빛 한낱 기억하지 못한 채 팔락이다
해진 노을빛처럼 성긴 제 눈물도 가리지 못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