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슬리퍼 (개작)

sihatogak 2008. 9. 11. 14:38

슬리퍼

                                                                              


1. 池

욕실에 황소개구리만한 아이들의 슬리퍼 물에 젖은 채 사방팔방으로 튀려다 자빠지거나 벌렁 누워 있어 구멍이 숭숭 나 공명통을 잃은 늙은 맹꽁이마냥 습지에 갇혀 있던 것들 가끔 밖에 나와도 오래 달리지 못해 쉽게 허락하고 쉽게 버림받는 것들 물 머금지 못하는 타일벽에 세워 둬 아내랑 할 때 자지를 세우려 하듯 딱딱해진 혀로 아이들을 세우려 한 적 있어 뭍에 나온 은어처럼 사랑이 빳빳하게 굳어가


2. 陋巷

안마를 받으러 가 본 적 있어 불편하게 얇은 슬리퍼들이 낮게 줄 서 있던 곳 소경의 안마를 받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미움; 짜증나 내일; 보고 싶지 않아도 보여 머뭇거림과 싸움; 마구 섞여 될 대로 되라지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만 보이지 않아 젖가슴을 무지하게 덜렁거리며 소가 들어와 밭을 갈만하고 날 좋은 쟁기도 있는데 부리는 소가 내 집 소가 아니라서 한참을 머뭇거려 주섬주섬 일어서 엘리베이터까지 걸어나오는 동안 슬리퍼를 신고 나왔는지 그냥 나왔는지 알 수 없지 합리(合理)는 그때 너무 얇고 너덜너덜했어


3. 꽃무늬 거울면

보이지 않아 중학교 2학년 어느 찬 겨울 아침 서릿발에 얼얼해진 귓불로 어섯만 보던 시절 너는 안경을 벗어 질 낮은 쓰레빠로 왼뺨을 맞지 그도 남자라서 때려 남자라서 너도 울지 않아 창가에 얼핏 그녀가 보여 그때부터 슬리퍼가 여자 같다는 생각을 해 얼근한 여자 네가 벗어 놓은 안경 같은 여자 벌집 같은 여자의 자국이 거울면의 꽃무늬처럼 오래 남아돌아 무얼 보러 갔는지 돌 위에 올려둔 안경은 여태 돌아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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