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혀로 빛나게 핥아놓은 밥그릇에는
허기가 가득 차 있다
허기는 투명하지만 잘 보인다
뼈가 앙상한 것을 보면
이빨은 이제
밥그릇도 씹어먹을 수 있으리라
나는 개들이
씹던 목줄을 뱉어내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내 손가락을 철망 안으로 넣어주었을 때
녀석은 절대로 물지 않았다
내가 밥을 준다는 투명한 의식이
녀석을 밥그릇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를 주고 싶지만
나는 사장의 명령에 따라 한 끼만 주고 있다
나는 회사의 수위
개는 밤에 내가 할 일을 대신한다
사원들이 퇴근할 때, 개집 문을 열어놓아
불투명한 밤을 투명하게 밝혀놓아야
안심하고 잠잘 수가 있다
간밤에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일감들 사이에서 녀석이 잡아놓고
다 먹지 않은 의문 하나가 피를 흘리고 있다
내가 받은 임금은 아주 적다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
그러니까, 개밥 정도인 것이다
개의 그 깊은 낮잠 속에 고여 비치는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최종천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투명'은 유리처럼 비친다는 투명과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의 투명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보이는 투명과 보이지 않는 투명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둘 다 통용되고 있다. "허기는 투명하지만 잘 보인다"에서는 후자의 의미를 "불투명한 밤을 투명하게 밝혀놓아야 한다"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다. 투명은 우리에게 잘 보이게 하거나 보이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시인은 그 역할에 '살아있음의 정신'이라는 의미를 투영시키고 있다.
"다 먹지 않은 의문 하나가 피를 흘리고" 있는데 이 의문은 다음 다음 행에서 풀리고 있다. 즉 "게을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개밥'을 주듯이 깨달은 개는 다 먹지 않는다. 화자 스스로도 자신의 삶의 밥그릇이 빛나는 이유는 게을러지지 않으려는 자세에서 찾고 있다. 이는 무소유와는 다른 너무도 인간적인 그래서 비인간적인 삶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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