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
아내 몸에 손님이 온 모양이라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니 이불에 피칠이 보인다
손님은 왔는데 아니라 한다
이제 막 돌 지난 녀석간밤에 립스틱을 꺼내 피칠을 했다 한다
아내 입에도 잘 쓰이지 않는 물건인데
제 온몸을 입으로 만들어 놓고는
침대며 베개 젖병이며 방바닥
키 닿는 낮은 곳에
막대 다 닳도록 온통 귀 같은 입들을 그려 놓았다
입이 없는 것들에게 립스틱을 발라 준 녀석은
몰래 나눈 이야기의 흔적들을 채 감추지 못한 채
부지런한 아침이 어릿광대처럼 곤하다
흰 핏톨도 끊지 못한 녀석이 열어 준 붉은 입들은
내가 눈을 뜨자마자 입을 다물어 버리고
안 바르는 게 훨씬 예쁘다며
립스틱 한번 건네 준 적 없는 나는
입에 풀칠로 아내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사랑한다 했던가
녀석의 손님들이 가기 전에
귀 그려 달라 해야 할 텐데
입만 남겨두고 막대 속으로 손님들은 숨어버리고
어릿광대는 잠에서 통 깨어날 줄 모르고
하는 수 없이 어릿광대가 그려 놓은 붉은 입들에
없는 귀를 대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