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교도소

sihatogak 2005. 12. 1. 20:54
 

교도소 




1.

십오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키는 그대로다. 스물을 갓 넘어 교도소에서 삼십 개월을 보내던 시절, 하루는 나보다 조금 더 작은 동기와 함께 우리 둘보다도 더 큰 잔반통의 팽팽한 양 날개가 되어 교도소 흰 담벼락을 돌아갈 무렵, 저 꼬마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겨울에 저 고생을 할까 하는 면회객의 혀 끄는 속삭임이 우리의 비행을 저격하여 양 날개가 물에 젖었다. 담 너머에 어떤 뜨지 못하는 비행을 두고 두 꼬마의 낮은 비행 좌표를 짚었을까? 내 오랜 좌표는 1번이다.


2.

우리의 비행이 날랐던 환상의 잔반은 오리를 우리에 가두어 날지 못하게 살찌웠고, 삼십 개월이 다 차는 날 우리의 환송연 만찬이 되었지만, 내 번호는 그대로다. 흰 방주의 네 귀퉁이 등대는 좌표를 일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의 등대는 호랑이를 가두고 용의 승천을 가로 막는다. 그 짐승들에게도 번호가 있다는 이유다.


3.

오늘 문득 운주사 가는 길목에 그 비행의 도시 빛고을을 들렀다. 몇 개의 번호가 더 생겼을 뿐, 번호는 모두 그대로였다. 그리고 천 불 천 탑의 운주사로의 처녀비행, 입구에 와불 한 쌍의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번호가 있는 것들은 묻히지도 못하는지 떼도 없었다. 무릎을 꿇어 그 큰 귀에다 대고, 두 부처님은 무슨 죄를 지으셨기에 천 년의 비바람에 땅 속에 묻히지도 못하셨는지 여쭸다. 비바람에 입이 없으시다. 합장하여 하직하고 한참을 걸어 일주문을 나서려는데, 두 돌덩이 사이에 놓인 큰 밥통은 보이지 않느냐 하는 소리가 하늘을 난다. 천 년이 넘도록 누워서 어디로 밥을 나르고 계시는 것인지, 내가 가둔 철문은 열리지 않고 소리만 하늘을 난다.

 

4.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처나 나나 밥을 나르고 있다. 죽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밥을 날라야 한다. 번호를 지우고 문을 지울 수 있을 때까지는 밥을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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