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악센트도 없이

sihatogak 2005. 11. 3. 07:47
 

악센트도 없이,




땅을 보러 갔다

밭이 되었건, 산이 되었건

바람을 잘 막고 물이 좋게 흐르는 땅을 보러 갔었다

지난 해 아흔하나의 아비를 묻고

예순다섯의 한가위에는 손이 하나 더 늘어

일곱이나 거느린 고아 할아버지,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다가 어머니가 땅 이야기를 꺼내자

아버지를 닦달하던 금주(禁酒)에 대한 이야기가

간암에 묻혔는지 당뇨에 녹아났는지 땅에 눌리었는지

입 밖에 나온 말들을 딱딱하게 얼렸다

한가위 지나고, 서리가 내리고 나서도

96년식 엑센트를 끌고 땅을 보러 다녔다

서너 번 가고는

발가락이 두 개 잘려 다리가 퉁퉁 부은 아버지와

시내 교차로 한복판에서 숨을 헐떡거리다 퍼져버린 엑센트를 두고

십자로 한복판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온갖 종족들이 엑센트를 향해

애도의 경적을 울려대고

가장 긴 애도를 표한 견인차가 엑센트를 끌고 가버렸다

끌려가는 뒷모습에서

아버지의 이른 나이테가 비상으로 껌벅, 껌벅거리고

아버지의 악센트를 어디에 언제 두어야 하는지 잘 몰라

악센트도 없이, 한참을 기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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