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
길고 큰 구멍이 동심원으로
관자놀이에서 뛰논다
한참을 놀다가
찬물도 씻어 먹는 엄마를
코끝에 몰아놓고는
종아리를 마저 올려세운다
찬물로 찬물을 헹군 엄마는
늘 뜨겁고
저녁은 오늘도 길고 크다
신나게 놀다가 들어왔을 뿐인데
식을 것 없는 상보 아래 저녁은 심심하게 식어가고
엄마는 속이 다 보이도록
자꾸 아까운 찬물을 헹궈낸다
그때마다 길고 큰 구멍은
중심을 잃고 나를 향해 운다
종아리를 올리기 전부터 저녁이 다 내려앉을 때까지
찬물 같은 엄마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면
관자놀이는 제멋대로 뛰놀고 저녁놀처럼 어지럽다
심심한 저녁은 동심원으로 종아리를 말아 올린다
놀면서도 심심해하는 나를 엄마는 잘 알고
나는 파이프와 더 친하다
파이프가 나를 파이프로 만들어주기로 한 걸
엄마는 모르고
그 길고 큰 저녁의 끝까지 나는 알기 싫지만
모르는 척해도 떠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
짧고 작은 종아리로 중심을 잡는다
어디 따로 향할 데가 없는 것처럼
심심한 종아리를 따라다니며
놀기에도 아까운 저녁을 마저 헹군다
마치 아무 소리도 흘리지 않는다는 듯이
동심원으로 멀리 뛰노는 저녁의 종아리를
차마 못 보겠다는 듯이
찬물을 뜨겁게 헹궈낸 파이프의 끝이
입에 딱 달라붙어
다 저녁 찬물에 밥을 말아
뚝뚝 떨어지는 딸꾹질을 건져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