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와 술병
시집 모서리를 세워 바닥에 탁 탁 탁
털린 음운들을 귀에 털어 넣는다
ㅜㅜㄹ ㅜㅜㄹ 귓속에서 ㅜㅜㄹ
게를 키우는지 게가 키우는지
내 안에 게 한 마리
술을 붓는다 울렁울렁
넘치지 않을 것처럼 출렁 제자리인 것처럼 철렁
귀신과의 사랑이야기를 첫 장부터 펼쳐 놓고
혀를 닮은 활자들의 뿌리를 뽑아 달여 마신다
참방참방 낫지 않는 말들을 누가 마시나
혀를 넝쿨째 눈에 넣고 눈을 감는다
한 백 년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는 것처럼 멈춘 피가 도는 것처럼
감은 눈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뒷걸음치는 나를 넣고
독한 술로 나를 우겨 넣고
눈에 입에 넣고 석 달 열흘 귀에 넣고 서른 계절 마흔의 봄
넣고 넣고 마냥 넣은 주둥이가 궁둥이가 되도록 두드리면
마른 모래 쏟아지듯
내가 쏟아지고 나만 엎질러지고
일그러진 게 한 마리 병에 비친다
음운들을 통째로 부어 넣고 귀신을 불러 모아 들여
쫓는다 게 서라 게 서라 부어라 더 부어라
ㅅㅜㅜㄹ 귓속에서 ㅅㅜㅜㄹ ㅅㅜㅜㄹ
마셔라 실컷 ㅜㅜㄹ 천년만년 ㅜㅜㄹ ㅜㅜㄹ
쫓아라 쫓아라 게를 쫓아도
엎질러 자빠지는 건 나뿐
손에 잡힌 게는 이미 게가 아니고
뒷걸음치는 발들이 병 안에 굼실굼실
비울수록 발자국들로 병이 가득 차고
온데간데없는 게는 거품을 게워내듯
내로라하는 구멍이라는 구멍으로는 모래들만 게워내고
입을 닫고 눈을 닫은 나는 마저 귀를 닫는다
병의 내벽이 두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