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게와 술병

sihatogak 2016. 9. 2. 12:14

게와 술병

 

 

 

 

 

 

시집 모서리를 세워 바닥에 탁 탁 탁

털린 음운들을 귀에 털어 넣는다

ㅜㅜㄹ ㅜㅜㄹ 귓속에서 ㅜㅜㄹ

게를 키우는지 게가 키우는지

내 안에 게 한 마리

술을 붓는다 울렁울렁

넘치지 않을 것처럼 출렁 제자리인 것처럼 철렁

귀신과의 사랑이야기를 첫 장부터 펼쳐 놓고

혀를 닮은 활자들의 뿌리를 뽑아 달여 마신다

참방참방 낫지 않는 말들을 누가 마시나

혀를 넝쿨째 눈에 넣고 눈을 감는다

한 백 년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는 것처럼 멈춘 피가 도는 것처럼

감은 눈에서 모래가 쏟아진다

뒷걸음치는 나를 넣고

독한 술로 나를 우겨 넣고

눈에 입에 넣고 석 달 열흘 귀에 넣고 서른 계절 마흔의 봄

넣고 넣고 마냥 넣은 주둥이가 궁둥이가 되도록 두드리면

마른 모래 쏟아지듯

내가 쏟아지고 나만 엎질러지고

일그러진 게 한 마리 병에 비친다

음운들을 통째로 부어 넣고 귀신을 불러 모아 들여

쫓는다 게 서라 게 서라 부어라 더 부어라

ㅅㅜㅜㄹ 귓속에서 ㅅㅜㅜㄹ ㅅㅜㅜㄹ

마셔라 실컷 ㅜㅜㄹ 천년만년 ㅜㅜㄹ ㅜㅜㄹ

쫓아라 쫓아라 게를 쫓아도

엎질러 자빠지는 건 나뿐

손에 잡힌 게는 이미 게가 아니고

뒷걸음치는 발들이 병 안에 굼실굼실

비울수록 발자국들로 병이 가득 차고

온데간데없는 게는 거품을 게워내듯

내로라하는 구멍이라는 구멍으로는 모래들만 게워내고

입을 닫고 눈을 닫은 나는 마저 귀를 닫는다

병의 내벽이 두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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