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sihatogak 2016. 9. 2. 12:01

 

 

 

 

 

 

남은 이야기는 엎거나 묻거나 할 일

우뚝 솟아 검은 서녘 산

뒤에 숨겨놓은 컴컴한 빛

들락거리는 날짐승의 허기로 엮어 내려간

깊고 검은 구렁

숨긴 이야기 영영 잃어버리고 나면

버리든 떠나든 할 일

유리벽이 노을 번진 산을 사각사각 잘라

저녁을 차곡차곡 개키는 저녁

버리고 떠난 애인의 오늘은 어딘가

가 닿을 수 없는 오늘 저녁

벽도 벽 너머도 검붉게 젖어

떠벌리기라도 할까 크게 검게

형언할 수 없이 길어진 찰나와

떠벌려도 이르는 파국에 대해

귀에 박혀 찾을 수 없는 용기에 대해

몸을 기울여 피를 다 엎지르기라도 할까

저문 사랑의 그림자들을 빚어

길고 어둔 속눈썹으로 말아 올려놓고

크게 뜰까 깊게 감을까

대가리 살을 발라먹다 문득 서늘해져서

넋 놓고 웃든 등골로 울든

울든 웃든

다 나였으므로 내가 다였으므로

검은 산과 살을 섞어

그림자를 바를까, 다시

발라도 발라도 비린 대가리가 구렁이 되는

이 찬란한 검은 찰나를

저 검디검은 나를

지우든 찰나처럼 게 세워두든 할 일

미워할 일로 가득 텅 빈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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