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두부를 뒤집으며

sihatogak 2012. 10. 24. 23:47

두부를 뒤집으며

 

 

 

소주를 마셔

배추를 심거나 콩을 따지는 않았지만

밤하늘 구름의 행방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다가

알파벳 L처럼 앞뒤로 발음을 걸치고 싶어서

지난날들을 떠올렸던가봐

 

페달을 밟아

어제의 잘못 든 구름들에 가닿고자

빠진 체인을 장갑 낀 손으로 채우다 못하고

장갑을 벗고 체인을 채웠어

알파벳 L처럼 앞뒤로 걸리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는데

눈발은 자꾸 뒤로만 가는 거야 구름은 온데간데없고

 

구름의 행방을 끝까지 지켜본 사랑은 아마 없을 거야

두부를 부치며

뒤집을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을 생각했던가

오늘을 어제 뒤로 미루거나 어제를 내일에 묶어두는 일은 불가능하겠지

장갑 낀 손으로 체인을 못 채웠듯이

손이 더러워지는 게 당연했는데

 

콩을 심거나 배추를 거둬들인 적 없이

두부를 부쳐 소주를 마셔 페달을 밟아

손쉽게

다섯 번 쏘아 다섯 번 다 빗나간 구름의 행방들

구무럭구무럭하며

왜 삼수와 갑산에도 있지 않은가 이 겨울에 눈 머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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