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

김기택 우리나라 전동차의 놀라운 적재효율

sihatogak 2008. 5. 17. 16:05
 

김기택 『사무원』


우리나라 전동차의 놀라운 적재효율


빈틈마다 발 하나라도 더 집어넣기 위해

밀고 밀리고 비비틀고 움츠린 끝에

사람들은 모두 사각기둥이 되어 있다.

승객들을 벽돌처럼 맞추어 빈틈을 없애버린

놀라워라, 전동차의 저 완벽한 적재효율!

전동차가 급정거하자 앞쪽으로 사람들이 기운다.

사각기둥들은 일제히 흐트러지며 찌그러지고

그동안 조용하게 질서를 지키던 비명들이

찌그러진 사각기둥에서 일제히 터져나온다.


영자야엄마나여기있

어밑에아기가깔렸어

요숨막혀내핸드백내

구두나좀내리게그만

밀어어딜만져이짐승

쌍년아야귀찢어져손

가락에귀걸이걸렸어 

어딜자꾸만주물러소

새끼침튀겨개년말새


드디어 전동차 문이 폭발하듯 열리고

파편처럼 승객들이 퉁겨나간다.

승객들이 미처 다 밀려나가기도 전에

한떼의 사람들이 또 밀려들어온다.

빈틈, 퉁겨져나간 사람들 뒤에 생긴

저 좁디좁은 빈틈을 향하여

머리와 팔다리와 구두들이 밀려온다.

아무리 튼튼해 보이는 벽도 온몸으로 부딪쳐 밀면

발자국 하나 디딜 공간이 나온다는 것을

노련한 승객들은 잘 알고 있다.

차곡차곡 구겨넣어진 사람들을 한번 더 누르며

전동차 문이 있는 힘을 다해 닫힌다.

전동차가 출발한 다음에도 비명과 신음이

찌그러진 사각기둥마다 새어나오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정사각기둥을 되찾아가고

몸 비틀 때마다 벌어진던 빈틈도 모조리 메워버린다.

빠르고 정확하다, 우리나라 승객들의

자동화된 저 순발력!

비명과 짜증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찌그러졌던 사각기둥들은 어느새 반듯하게 펴지고

사람들은 다시 질서정연하고 고요해진다.

 

 

“퉁겨지는 효율성”


  현대는 자본의 사회다. ‘자본’이란 무엇인가?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기저(基底)이며 목표이다. 그럼 이윤의 추구는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가?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 그래야 효율적(效率的)이지 않은가. ‘효율적’이란 어휘의 사전적 의미는 ‘노력에 대하여 얻어진 결과가 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기성이 농후한 것 아닌가?

  제목 「우리나라 전동차의 놀라운 적재효율」에서 ‘전동차’는 자본을 쫓아다니는 아니 자본에 끌려다니는 사무원, 노동자들의 출퇴근 교통수단이다. 사실 전동차의 적재효율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놀라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전동차 안에서 “사각기둥이 되어 있다.” ‘사각기둥’은 반듯한 이미지인데 그들은 ‘찌그러진 사각기둥’으로 익명화되어 ‘짐승’, ‘쌍년’, ‘소새끼’, ‘개년’, ‘말새끼’가 된다. 그들은 이윤창출을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최대한 전동차 안에 투입이 되어야 한다. 효율적인 것과는 상반되게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資本主)에게는 너무나 효율적이지 않은가?

  익명화된 그들은 그 안에서 고요하고 조용하게 정사각기둥이 되어 질서를 지키고 있다가 ‘비명’과 ‘신음’을 토해내듯 퉁겨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퉁겨나간 후에나 이름을 발설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조성환의 죽음」을 보자. “더 살려두어도 이 세상에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을 조성환”은 표시도 나지 않게 죽는다. 「껌뻑이 兄」을 보자.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소문으로 죽어 돌아온 껌뻑이 형”, “껌뻑거리는 눈 말고는 누구에게도 기억을 남기지 않은 껌뻑이 형” 또한 소문으로 죽고 누구에게도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래서 효율적이다. 그들이 표시가 나거나 기억을 남기게 되면 비효율적인 실재가 된다. 그것은 자본의 사회에서 의미 있는 것일 수 없다.

  「출퇴근길 풍경」을 보면 산은 아침에 시끄럽고 저녁에 고요한 반면, 지하철은 아침에 조용하고 저녁이 되면 시끄러워진다고 말하고 있다. 전동차 안의 풍경, 아침에 무거운 몸을 끌고 나온 그들은 하루일과가 끝나면 술 먹은 채 활기차다. 출근 후 그들의 일상은 「사무원」에서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서만 은둔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무원의 여섯 개의 다리로 용맹정진하고 있지만 전동차 안의 익명화된 또 다른 이는 여섯 개의 팔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퉁겨지는 그들. 퉁겨지는 효율성. 여기서 ‘퉁겨지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①숨겼던 일이나 물건이 뜻하지 않게 쑥 비어져 나오다. ②짜인 물건이 어긋나서 틀어지다. ③노리던 기회가 뜻밖에 어그러지다. ④뼈의 관절이 어긋나다. 공통적 의미는 ‘어긋나다’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빈틈을 메우는 것에도, 퉁겨나가는 것에도 익숙하다. 그들의 “자동화된 저 순발력!”은 익숙할 정도로 어긋나 있다. 그래서 김기택은 「소매치기」에서 우리들에게 혹은 그들에게 능청스럽게 이야기 한다. “그냥 가만히 놔두어도 어디 도망가지 않”는, “꼬리를 흔드는”, “그 놈들은 새 주인이 아름다운 솜씨로 낚아채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소매치기에게는 전동차 안의 사각기둥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겨운 일일까?

  

  그들이 튕기며 살아가는 것을 그려본다면 불온한 상상일까?

 

'좋은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승희의 시작법 - 언어유희(pun) 혹은 파자(破字)놀이  (0) 2008.10.29
오규원 <꽃과 그림자>  (0) 2008.05.27
김수영 여자  (0) 2008.05.13
오장환 종가(宗家)  (0) 2008.04.15
백석 적경  (0) 2008.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