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

오규원 <꽃과 그림자>

sihatogak 2008. 5. 27. 10:38
 

오규원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꽃과 그림자


앞의 길이 바위에 막힌 붓꽃의

무리가 우우우 옆으로 시퍼렇게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왼쪽에 핀 둘은

서로 붙들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무더기로 핀 아홉은

서로 엉켜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오른쪽에 핀 하나와 다른 하나는

서로 거리를 두고 보랏빛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붓꽃들이 그림자를

바위에 붙입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바위에 붙지 않고

바람에 붙습니다



‘그러나’ 안의 ‘그리고’


  시집의 제목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이다. 여기서 ‘그리고’는 말이나 문장을 이어주는 구실을 하며 ‘그리하여, 또, 와, 및’ 등의 의미를 갖는다. ‘새’와 ‘나무’와 ‘새똥’, ‘돌멩이’는 등가(等價)의 사물들로 어느 하나 처지거나 불거지거나 하는 것 없이 나란히 놓인 것들이다. 그런데 「꽃과 그림자」에서는 ‘그러나’가 5번이나 쓰인다. 일정한 시구절에 놓인 ‘그러나’는 제목인 ‘꽃과 그림자’를 강조하는 장치로 쓰였을 것이다.

  「꽃과 그림자」를 액면 그대로 읽어보자. 지금 이맘때쯤일 것이다. 붓꽃의 무리가 앞길을 막고 선 바위 때문에 옆으로 ‘시퍼렇게 번지고’ 있다. 이것은 붓꽃의 입장이다. 시인은 이 지점에서 ‘그러나’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둘은 ‘붙들고’, 아홉은 ‘엉켜’ 있고, 하나와 다른 하나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시퍼렇지 않고 ‘보랏빛’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란히 있는 듯하지만 제각각인 모양새다. 그래서 그러나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그러나’가 아닌 ‘그리고’를 써도 의미를 읽어내는 데는 무방하다. 더 나아가 다음 행의 ‘그러나’ 또한 ‘그리고’로 바꿔도 무방하다. 이 행에서는 보랏빛으로 핀 둘, 아홉, 하나와 다른 하나의 붓꽃들이 바위에 그림자를 붙이고 있다는 정경을 그려내고 있다. 단 아직 바람이 불지 않은 붓꽃들의 번짐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행의 ‘그러나’는 ‘그리고’로 치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고 있어서 붓꽃들의 그림자가 흔들려 바위에 붙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의 4번의 ‘그러나’는 마지막의 ‘그러나’를 위한 전주(前奏)인 것이다. 시인은 보랏빛 붓꽃들이 나란히 있는 듯하지만 각각의 어울림을 갖고 각각의 자리에서 각각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려내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날이미지’는 날것에 대한 치열한 그의 눈건넴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