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똥싼할아버지

sihatogak 2006. 9. 2. 10:35

똥싼할아버지


조선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할아버지
내게 이름을 준 똥싼할아버지
망건처럼 허름한 몇 가닥의 수염을 달고
좁은 어깨로 시골집에 호젓이 매달려 있던
그의 꿈을 지관을 대동하고 열어본다
합방 중이던 그가 팔베개를 풀고
뼈 마디 마디를 푼다
묻은 흙을 툭툭 서로 털어주며
헛기침으로 짐짓 의관을 정제하고는
21세기의 바람을 맞는다
그동안 평안하셨던가 좋은 꿈 꾸셨던가
삼 세기에 걸쳐 바람 잘 쐬셨던가
머릿속 가벼워 환하게 웃는다
똥을 언제 쌌냐는 듯이
바람 들락날락할 구멍이랄 것도 몸이랄 것도 없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이길 승 빛날 엽으로 주고는
서른 해 넘도록 언제 이기는지 언제 빛나는지
기다리다 벽에 빛나는 똥칠을 하신 할아버지
그의 꿈, 이기고 빛난 이름 승엽씨는

또 다른 서른 해 넘기도록 
누구 하나 이름 주어 보지도 못한 채
오늘 아산 병원 응급실에서
병상에 똥칠을 했다 비로소 이름을 빛냈다
좋은 이름들을 주고는
정작 자신의 이름은 벽에 똥으로 남긴지 모르는
똥싼할아버지
나의 퇴화하는 전래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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