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포(樗蒲)*도 없이
젯날은 분명한데 누구의 기일인지가 분명치 않더라는데 여하간 많은 구신들이 젯밥 먹으러 멀쩡하게들 왔더라는데 그 중 몸 없이 머리만 온 젊은 여자 구신이 오지랖 넓게도 이 구신 저 구신들 술대접을 잘 해드려 온 구신들이 성주상에 오른 음식들 가짓수 보면서도 올해는 눈물바람 없이 가볍게들 갔더라는데 배웅까지 극진하게 하더라는데 그보다도 젯밥 먹으러 올 구신들보다 한 사흘 먼저 와서 산 자들과 함께 음식장만하고 멱도 감더라는데
살아 장가 두 번 간 서울할아버지 구신이 던진 말 “택시 타고 갈 때 기사양반헌테 주소 말허지 마라 명심혀” 지방 불사르고 향 촛불 끄고 남은 산 사람끼리 음복하고 젯밥에 꽂혔던 숟가락 들 때에도 그녀는 산 사람 사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더라는데
하나둘 일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기사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뒷좌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기사를 깨우며 차비를 곱절로 셈하는데 그 기사양반 잠결에 “여 어디요?” 묻는 말에 얼떨결 내 사는 곳을 콕 짚고 말았더라 심약한 나는 무서워 산에 약초는 못 캐러 가는데 어쩌나 고작 앞마당에 널린 활자들 사이만 서성거리는 나와 저포라도 한번 두려고 머리 없이 집 앞에 섰는 것이냐 어쩌랴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