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

송재학 '흰뺨검둥오리'

sihatogak 2013. 3. 27. 17:30

흰뺨검둥오리

 

 

그 새들은 흰 뺨이란 영혼을 가졌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에서 흰색까지 모두

이 늪지에선 흔하디흔한 맑음의 비유지만

또 흰색은 지느러미 달고 어디나 갸웃거리지

흰뺨검둥오리가 퍼들껑 물을 박차고 비상할 때

날개소리는 내 몸 속에서 먼저 들리네

검은 부리의 새떼로 늪은 지금 부화 중,

열 마리 스무 마리 흰뺨검둥오리가 날아오르면

날개의 눈부신 흰색만으로 늪은 홀가분해져서

장자를 읽지 않아도 새들은 십만 리쯤 치솟는다네

흰뺨검둥오리가 떠메고 가는 것이 이 늪을 포함해서

반쯤은 내 영혼이리라

지금 늪은 산산족각나기 위해 팽팽한 거울,

수면은 그 모든 것에 일일이 구겨지다가 반듯해지네

 

 

 

산산조각나기 위해 팽팽한 영혼의 소요유(逍遙遊)

 

모든 것에 일일이 구겨지다가 반듯해지는 영혼의 얼굴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발라져 있다. 컴컴하기도 하지만 눈부시기도 한 영혼은 어디나 갸웃거리다가 날아오를 때가 온다. 눈부시게 맑은 영혼의 날아오름은 실을 잡아당기는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혼 그 자체의 비상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날갯짓은 내 몸 속에서 먼저 들리고 눈부신 영혼을 떠메고 구만리장천의 붕새보다 멀리 치솟는다. 산산조각나기 위해 팽팽한 영혼의 소요유가 그 늪에서 오늘 도 펼쳐지고 있다. 먼저 들리고 멀리 치솟는 영혼의 소요유가 구겨지다가 반듯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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