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冊

김진완 <모른다>

sihatogak 2012. 2. 21. 16:32

맨손으로 코를

 

-김진완 『모른다』를 읽고

 

엄지와 검지로 콧방울을 쥐고 코를 풀며 어딜 가나 그는. 손수건 없이. 스냅을 이용해 묻은 콧물을 떨어내고는 바지춤에 쓰윽 문지르고 팔소매로 코를 훔치며 가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콧물은 가는 내내 나올 것이므로. 걸으며 때론 코 풀던 손가락으로 미간을 쥐기도 하리. 그러다가도 능청맞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윙크를 날리리. 뜬금없지 않게 뜬금없이. 시치미도 떼리. “봐봐 두툼허니 묵직허니 뻑지근한 이내 맘!” 하며 흰소리도 치리. “자본의 밑구멍이나 핥는 / 모오든 꿍꿍이꾼들보다 / 저 벌건 개수작이 / 훨씬 윗길이다!” “……오르가즘보다 천만리 윗길인 캐피탈리즘 몸주시여! / 내 거추장스러운 영혼을 더 실컷 갖고 노십소사-” 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리.

누구나 코를 푼다. 그러나 맨손으로 코를 푸는 사람은 이제 교양머리 없는 사람으로 내몰린다. “쌔가 만발이나 빨질 놈”으로 몰려도. “어퍼와 후크 연달아 먹”어도. 그는 맨손으로 코를 푼다. 손수건으로 닦을 짬이 없다. 나무등걸에, 풀잎에, 때로는 시멘트 담벼락에 닦으며 “……시만 / 생각하면세상이가소롭 / 고.오요요세상을생각하면새끼들이가엾어.”서 “난 귀를 막고 / …… / 속울음 울며 간다 /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 가느라고 간다” 연신 코를 풀어대며 간다. 살붙이들을 닦고. 실업자와 노숙자를 닦고. 자본의 밑구멍을 닦고. 첫사랑을 닦고. 차에 치인 새끼 밴 개를 닦고 닦고 닦으며. 그 모든 것들의 환청 들으며 간다.

닦는 게 능사는 아니다. 콧물은 왜 나오는가. 그는 모른다는데. 그는 안다. 알고 있다. 삼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환청이나 듣는 삼류. 그래서 그는 손수건이 없다. 교양 없다. 우리는 “이 자를 베어야하나” 닦아도 다 닦이지 않는 그것들. 베어도 다 벨 수 없는 삼류. “베어야하나” 어쩌자는가. “우구구―우구구구―지켜보기만” 해야는가.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 용―감―하―게 싸―우―시―나― / 님이여 건강하소서”라고 그는 직접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윙크를 보낸다. 그의 추파에 넘어갈까. 아니면 그런 추파를 보내게 된 원인을 되새길까. ““흥! 남은 아파 죽겠다는데 저만 좋으면 단가?””, “쪽수로 존나 밀어붙”여도 꿈쩍하지 않을 것만 같은데 나는 어쩌나.

발화의 5할이 “모른다”인 나는 직면하지 않은 자이다. 왜 직면하지 않는가.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운가. 사다리가 넘어지거나 없어질까 두려운가. 어디를 오르려는가. 어디로 건너려는가. 직면은 오르고 건너는 그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고 건너기 직전의 사다리를 들고 있는 이곳에 있다. 발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 있다. 그처럼 찬찬하게 들여다보라. 발화의 나머지 5할조차도 “모른다”로 바뀌게 되더라도 꿍꿍이 없이. 팽팽 코를 풀어 제치며. 들여다보라. 용감하게 배려할 줄 아는 삼류가 되도록. 다 모르게 되더라도 용감하게 배려할 줄 안다면 맨손으로 코를 풀며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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