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소년의 태도 유희경 『오늘 아침 단어』
내 안의 있는 나의 울음. 그 울음을 듣는 소년은 아득한 시간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음으로 인해, 미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그러므로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조차, 꿈을 꾸듯 꿈에 대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가 꾼 꿈을 들춰볼 자격이 우리에겐 없으므로”(「어떤 연대기」) 소년은 그 꿈의 내용을 알 수 없음으로 인해 슬픔에 빠진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린다. “어차피 위선 아니면 위악 (……) 결론의 집에서”(「한편」)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
눈길이 자주 가는 시어 ‘모른다’, ‘꿈’, ‘없다’. 꿈에 대해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여 소년은 ‘나’에 대해 골몰한다. 그리고 골몰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는 듯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나’의 위치를 「당신의 자리」에서 “나는 당신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당신은 그토록 나를 지우는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나’의 위치는 당신의 자리에 대한 자각 위에서 자각되는 위치다. 그 위치에 마주 앉아 있는 당신과 나의 내일에 관하여 소년은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내일, 내일」)라고 말 없는 당신을 더듬을 뿐이다.
모든 ‘나’가 그러하지 않은가. 당신에게 닿고자 하나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느끼고 점차 미쳐가고 있지 않은가. 하여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법 따위는 지운 지 오래”(「지워지는 地圖」)인 소년의 마음은 어떤 결을 가지고 있을까. 이미 내일을 지워버리고 오늘만을 생각하는 꿈만을 밤마다 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한 오늘조차도 저녁이 아닌 아침, 그 아침의 단어 하나를 떠올리는, 눈 뜨고 꾸는 꿈인 ‘생각’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여 “바깥이란 얼마나 흐릿한 것인가 오늘,처럼 쓰기 쉬운 단어가 또 있는가”(「오늘의 바깥」)라고 소년의 발설이 내뱉어진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와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얼비치는 「너가 오면」에서 ‘나’는 ‘너’를 기다린다. 기다리고 있다.
(전략) 아무것도 없는 세계의 밋밋한 한 곳을 가리키듯 막막함이 그려져 손으로 따라 걸어 들어가면 그대로 너를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숨이 타오름이 재가 된 질식이 딱딱하게 그저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그건 너가 아니고 기실, 나는 네 눈 뒤에 서 있어서 도저히 보이질 않는 너라는 미로를 폭우 쏟아져 내리는 오후처럼 기다려 이를 깨물고 하얗게 질릴 때까지 꽉 물고 어떻게든 그러므로, 너로부터 기어이 너가 오고
이 기다림은 “누군가의 냄새, 누군가의 감촉, 누군가가 놓고 내린 체온 이 우스운 일들을 얼마나 반복해 뒤집어야 하는지”(「오늘의 바깥」)에서처럼 반복해 뒤집어야 한다. 얼마나 뒤집어야 하는지 모른 채 반복해야 한다.
그런 소년의 오늘의 주소는 “나는 흔하고, 어디든 있고, 그러니 내가 혼자서 울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오늘은」)은 곳이다. 그러한 오늘이라는 곳에 있는 소년에게 내일은 끝이나 다름없다. “끝은 끝내 알 수 없는 것”(「어쩔 수 없는 일」)으로 남아 어쩔 수 없이 잠에 들어 꿈이나 꿀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는 “나는 그것의 뒤를 사랑하고 싶다”(「우산의 과정」)고 고백한다. 여기서 ‘그것’을 우산으로 본다면 ‘그것의 뒤’란 비를 막아 젖지 않게 해주는 그것이 아닌, 물이 고이게 해주는 웅덩이, 혹은 오늘의 바깥, 아니면 내일 그리고 너, 당신이 될 수 있겠다. 뒤를 사랑하고 싶은 소년의 사랑은 너무 일찍 늙어버렸나. 아니면 사랑이 쉬 늙는가. 둘 다 아니지 않을까. 사랑은 어리지도 늙지도 않다. 다만 사랑일 뿐이지 않은가. 늙은이의 사랑과 소년의 사랑은 그런 면에서 포개진다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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