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한식

sihatogak 2020. 1. 31. 11:18

한식

 

 

 

인부들이 먼저 와 기다렸다

별이 너무 많아 어두웠으므로

술을 따르고 우리도 기다려야 했다

형이 첫삽을 뜨자 어둠이 물러섰고

삽들이 일어나 떼를 떠냈다

발가락이 시린 나는 땔감을 날랐고

흙에서는 땅김이 올랐다

아버지는 깊었다

삽들이 고봉밥을 다 퍼먹자

바짝 언 아버지가 올라왔다

거부할 수 없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오래 묻혔던 미래가 나를 따라 다녔다

해진 옷이 살을 붙들고 있었다

아직도 갈 길이 남아 있는지

생쌀 넣은 입을 열지 않았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빈자리를

끝끝내 만져보지 못했다

로드롤러에 눌려 길이 된 엄지발가락은

돌아오지 못했고

뒤축이 짝짝이로 닳은 망고무신도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다

절뚝절뚝 여기를 건너는 냄새가 엎질러졌다

삽들이 맨손으로 옷을 덧입혔다

삽을 너무 헐하게 불렀다는 생각을 했다

형은 산에 새로 또 술을 뿌리고

이글거리는 숯들을 빈 구덩이에 쏟아부었다

불꽃이 일었다

불콰해진 진달래가

뜰 것 없는 빈 숟가락처럼 멍하니 바라보는 쪽으로

타다 만 재들이 흩날렸고

흩날리는 끝자락으로 하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찬 것을 먹기에는 좀 이른 듯한데

이른 새벽부터 찬 것을 들이켜고도

진달래는 더 들이켤 것을 찾는 듯했다

청명과 한식 사이

땔감이 반나마 남았는데도

아버지와 산을 내려가는 내내 발가락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