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유산지
sihatogak
2019. 3. 11. 20:40
유산지(硫酸紙)
카스텔라를 다 먹고 남겨진 너를 씹어 먹은 적 있어 네 이름 따윌 생각하기에는 가난의 양이 모자랐던 거야 나무에 대한 기억은 이제 없는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개구리 같은 네 이름을 사전에서 건져 올렸어
뚝.
뚝.
물기에 강해야 하는 네 이름
가난하고 고되고 시고 슬픈 네 이력에는 산소가 부족해 민물 짠물 차고 더움에 관계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오랫동안 견딜 수 있어서 카스텔라를 위해 포장만 하는 그래서 그랬니 속이 훤히 보이면서도 축축하게 젖을 줄도 모르는 너를 어쩌겠니 카스텔라는 작더라도 네 바닥에는 카스텔라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를 바랐는데 늘 부족했지 뭐니
카스텔라를 넷이서 나눠 먹고 네 등분한 너를 씹어 먹은 적이 있어 그것도 제일 작은 조각이 걸릴 게 뭐람 너라면 어땠겠니 그런 너를 처음 선보러 간 자리에서 보고 말았어 제기랄이지 뭐니
너를 보자 비로소 네 이름이 궁금했던 거야 애인이 일곱 번이나 바뀐 뒤였어 너는 바뀌지 않아서 멀어져 갔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니 네 이름을 아는 데 걸린 시간을 알기나 하니 그러고도 내 안에서 여전히 넌 투명한 거니
더 이상 너는 먹을 게 되지 못해 빠른 시간의 용액에 담긴 채 오랫동안 견딘 너는 질긴 사랑을 포장하고 있지 변질되지 말아달라고 아등바등하고만 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