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귀머거리

sihatogak 2014. 10. 8. 12:37

귀머거리

 

 

 

 

온몸이 귀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다 귀가 되었다

귀가 온몸을 다 들었다

앓는 중에도 칼만은 대지 말아야지

약을 챙기고 술을 멀리했다

봄에 울던 귀가 입동이 지나도록 울었고

이상한 소문이 자꾸 들리는 귀가 이상했다

들렸는데 들리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는데 들렸다

피를 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러

머리칼이 잘리고 식민지처럼 전신마취를 당했다

칼이 침략자처럼 들어와 뼈에서 살을 드러내

곪은 농을 긁어냈다고 했다 다 잘됐다고 했다

몸 스스로 몰아내리라 믿었는데

귀를 국가가 관리해주었다 다 잘 들릴 거라 했다

자정(自淨)은 스스로 더러워져 멀리 도망가버린 것 같았다

그 뒤로도 온종일 귀가 제 위치를 쉼 없이 알려왔다

손톱 밑이나 복사뼈에도 머물렀지만

몇 번은 몸 밖으로 나갔다오기도 했다

앞섰는지 뒤섰는지 왼편인지 오른편인지 자꾸 헛짚던 그 해는

여왕이 곳곳에서 출몰하던 해이기도 했다

집사네 집에 며칠 들렀다고도 했고

집달리가 여럿이라고도 했는데

가끔은 민가의 두꺼비집을 내리고

마술을 부렸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들리지 않았는데 들렸고 들렸는데 들리지 않았다

귀가 온몸을 다 듣듯 온 나라가 만져지고 들렸다

귀먹어 비로소 애국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