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률詩

대낮의 대답

sihatogak 2012. 10. 24. 23:11

대낮의 대답

 

 

등나무 아래서 네 책장을 넘기다 들은 말

태양과 활자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향기를 버리고 떨어진 꽃술들의 즐비한 바닥쯤 될까

꽃잎 지고 꽃술 떨어지는 사이쯤 될까

하늘 다 못 가린 이파리 사이사이 어느 하나 둥글지 않은데

활자 위 바닥 위로 떨어진 햇살이

둥글다 모두, 모나지 않다

태양에서 책장까지의 거리는

이파리에서 활자까지의 사이를 둥글게 말아올린다

활자 위에 내려앉은 너를 넘기고 넘겨도

너는 둥글다 사라지고 다시 둥글고

이파리 사이들을 책장 위에 잘못 인화한 거리

톡, 톡, 떨어지는 꽃술들 머리에 이고

툭, 툭, 털고 일어나 바라본 자리들 모두

바닥에 널브러진 태양의 겹눈들이 입을 동글게 말아 너울거리고 있다

들려주러 왔나 너는, 무엇 읽으러 왔나

금빛 땡땡이 문양의 검은 치마를 둘러쓰고 있는 대낮

네가 물은 말에 답을 못하고 있다가 비로소 내게서 들은 답

검은 치마를 뒤집어 써야 네 발뒤꿈치나마 겨우 볼 수 있다는,

너를 제대로 인화하면 눈이 먼다는 거리

동글동글 번지는 그 사이에서

넘기고 넘겨도 눈부신 네 책장 위의 활자들이

그늘을 소리 나게 읽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