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좋은 言語」
「좋은 言語」 - 신동엽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을 머리로
속속들이 굽이돌아 적셔보세요.
허잘것없는 일로 지난날
언어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허지만
그때까진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思想界, 1970년 4월호>
때가 온다는 믿음
신동엽 시인은 1930년에 태어나 69년도에 타계했다. 내 생애보다 짧은, 우리 나이로 不惑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좋은 言語>는 그의 사후에 발표된 유작이다. 59년에 등단해 60년대 활동했던 그가 “때는 와요.”라고 하며 “그때까진 /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 채워야”한다고 말한다. 나는 늘 ‘너머’가 과연 있기는 있는지 궁금해 한다. 달리 말하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의혹이 없다는 듯, 재티처럼 날려갈 소리는 외치지 말라고 하며, 조용히 자리를 낮추고 속속들이 적셔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 하면 그 ‘너머’가 온단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2010년도와 그의 1960년대를 단순 비교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그는 그 어려운 시대에도 ‘너머’를 잃지 않고 가야하는 길까지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지 않은가? 나를 돌아본다. 그래도 나는 무언가에 대한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의 “허잘것없는 일로 지난날 / 언어들을 고되게 / 부려만 먹었”다는 말에 위안을 삼고자 한다. 물론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 채워야” 한다는 사실 또한 새긴다. 내 ‘좋은 언어’는 어떤 언어여야 할까? 조용히 내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