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

김수영 여자

sihatogak 2008. 5. 13. 15:42
 

김수영


여자



여자란 集中된 動物이다

그 이마의 힘줄같이 나에게 설움을 가르쳐준다

戰亂도 서러웠지만

捕虜收容所 안은 더 서러웠고

그 안의 여자들은 더 서러웠다

고난이 나를 集中시켰고

이런 集中이 여자의 선천적인 集中度와

奇蹟的으로 마주치게 한 것이 戰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戰爭에 祝福을 드렸다


내가 지금 六학년 아이들의 課外工夫집에서 만난

學父兄會의 어떤 어머니에게 느낀 여자의 감각

그 이마의 힘줄

그 힘줄의 集中度

이것은 罪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여자의 本性은 에고이스트

뱀과같은 에고이스트

그러니까 뱀은 先天的인 捕虜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贖罪에 祝福을 드렸다

<1963. 6. 2>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者 누구냐?”


  ‘어떤 어머니에게서 느낀 여자의 감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머니’는 여자인가? 아니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 어머니에게서 느낀 여자의 감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에로틱한? 그윽한?

  이브의 원죄는 아담을 꼬드겼다는 것. 욕망은 욕망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 에덴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 앞에서 서러웠을 것이다. 선택은 서러운 것 아닌가? 전쟁터에서 삶과 죽음을 선택하여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포로로 산다는 것은 서러울 것이고, 또 수용소 안의 여자 포로는 더욱 더 서러웠을 것 아닌가? 남자보다 더 선택의 기로가 더 많을 것이므로...... 극한 상황에서 선택은 어떤 쪽으로 하든, 설사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을 하였다고 한들 서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자의 본성은 에고이스트 / 뱀과 같은 에고이스트’란 무엇인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죄를 저지르는 ‘선천적 포로’라고 김수영은 말하지 않는가. 극한적 상황에서 여자의 본성을 느껴 전쟁에 축복을 드리고, 그 여자의 감각을 다시 맞닥뜨린 지금 속죄에 축복을 드리고 있는 김수영은 참 인간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피노자 그가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 느낌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