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詩

오장환 종가(宗家)

sihatogak 2008. 4. 15. 10:59
 

종가(宗家)


  돌담으로 튼튼히 가려놓은 집 안엔 검은 기와집 종가가 살고 있었다. 충충한 울 속에서 거미알 터지듯 흩어져 나가는 이 집의 지손(支孫)들. 모두 다 싸우고 찢고 헤어져 나가도 오래인 동안 이 집의 광영을 지키어주는 신주(神主)들 들은 대머리에 곰팡이가 나도록 알리어지지는 않아도 종가에서는 무기처럼 아끼며 제삿날이면 갑자기 높아 제상 위에 날름히 올라앉는다. 큰집에는 큰아들의 식구만 살고 있어도 제삿날이면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 오조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주며느리 칠촌도 팔촌도 한데 얼리어 닝닝거린다. 시집갔다 쫓겨온 작은 딸 과부가 되어온 큰고모 손꾸락을 빨며 구경하는 이종언니 이종오빠. 한참 쩡쩡 울리던 옛날에는 오조할머니 집에서 동원 뒷밥을 먹어왔다고 오조할머니 시아버니도 남편도 동네 백성들을 곧잘 잡아들여다 모말굴림도 시키고 주릿대를 앵기었다고. 지금도 종가 뒤란에는 중복사나무 밑에서 대구리가 빤들빤들한 달걀귀신이 융융거린다는 마을의 풍설. 종가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일을 안 해도 지내왔었고 대대손손이 아무런 재주도 물리어받지는 못하여 종갓집 영감님은 근시안경을 쓰고 눈을 찝찝거리며 먹을 궁리를 한다고 작인들에게 고리대금을 하여 살아나간다.



커피 마시는 오장환의 시선

  오장환과 백석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백석의 작품 속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일단 음식이 아니나올 리 없다. 허나 오장환의 경우는 가족이 모여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오장환의 백석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그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해도 앞에 지은 그의 작품만으로는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는 앞날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자기의 감정이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백석 씨의 회상시는 갖은 사투리와 옛이야기,, 연중행사의 묵은 기억 등을 그것도 질서도 없이 그저 곳간에 볏섬 쌓듯이 그저 구겨 넣은 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혹평을 한다. 이를 오장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백석과 달리 시대에 대해 고뇌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시대에 대한 성찰’이 잘 형상화된 작품이 「종가(宗家)」와 「정문(旌門)」이다. 전근대적․봉건적 체제를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접근한 「종가(宗家)」는 착취의 전형적 모습을 통해 양반들의 기득권 유지를 풍자하고 있다. 그래서 당대에 이용악의 ‘낡은 집’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차가운 이야기’가……

  「종가(宗家)」에 나오는 ‘거미알 터지듯 흩어져 나가는 이 집의 지손(支孫)들’은 백석의 「여우난골족」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사뭇 다른 지손(支孫)들이다. 오장환의 지손들은 ‘모두 다 싸우고 찢고 헤어져 나가’는 일가이지만 백석의 지손들은 후처로 들어가거나 과부가 되었더라도 ‘북적하니’ 혹은 ‘흥성거리며’ 노는 일가이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통해 당대의 시대를 바라보는 두 시인의 시선은 사뭇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계급투쟁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하나의 시선은 당대의 삶의 슬픔까지도 안아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대에 상영되는 영화에서도 먹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먹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선혈이 낭자하는 조폭영화라도 제법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는 삭막하거나 건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보통이다. 오장환 작품에서의 먹거리는 ‘커피 한 잔에 온 밤을 흥분한다.’(「선부(船夫)의 노래」)거나 기껏해야 ‘탱자열매가 ~ 쓰지 못하는 실과의, 먹지 못하는 과일의 이리도 애처로운 향취여!’(「마리아」)이거나 ‘그리움도 맛없어라’(초봄의 노래)와 같은 양상을 보인다. 아픔으로 점철된 시대에 오장환은 시대를 앓다가 일찍 갔으니 그의 맛있는 시는 끝내 보지 못하게 되었다.